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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살렘 훈련원 이야기

킹살렘 훈련원 방문기 / 김준영

2019.10.22 00:47

kingsalem

조회 수473

저는 2012년부터 전주 대학에서 건축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입니다.

텍사스 오스틴에서 공부를 마치고 일을 하던 중 2009년 닥친 금융 위기와 함께 제게도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그 가운데 믿음으로 지원한 한국의 교수직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한국으로 부르시는 선교적인 사명이라 생각하며 돌아갔습니다. 고국에서의 저의 삶이 세속화 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러한 모습을 비평적으로 바라보고 제 자신을 정결하게 유지하며 구별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자각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갔고 세상에 동화되어 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저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갈수록 식어져 갔고, 그 가운데 지쳐가는 제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능력으로 평가받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서 최선을 다해 적응해 가려 했던 저의 모습은 점점 더 위선과 가식으로  젖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주어진 연구년 기회가 주어졌고, 신앙 생활을 하며 지내던 달라스의 옛 친구들과 LA에서 선교 훈련 중인 박성재 선교사가 생각났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미국 여행의 하나님의 첫 인도하심이였던 것 같습니다.

LA 공항에 마중 나온 박성재 선교사와 기쁜 만남을 가졌습니다. 킹 살렘 훈련원이 LA 근교라는 말을 듣고 30-40분 정도의 거리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2-3시간 운전을 해야 하고, 교통 혼잡 시간이 시작 되면 매우 막힐 수 있기 때문에 지체하지 않고 출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훈련원으로 향하며 멋진 미국 서부의 산들을 보며 감탄했지만, 속으로는 LA에서 계획한 나의 건축 기행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라며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박성재 선교사님을 첫 만남을 갖았습니다. 그리고 킹살렘 훈련원에서 보낼 시간에 대한 기대와 함께 당황스러움도 혼재하였습니다.

킹 살렘 훈련원에서 이순애 사모님께서 해주시는 맛있는 저녁을 먹고 다음날 이재환 선교사님과 함께 공동체의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경건의 시간을 함께 가졌는데 때마침 신명기 32장을 묵상했습니다. 광야 40년이 지난 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세가 느보산에서 주님께 말씀을 듣는 장면이었습니다. 킹 살렘 훈련원은 드넓은 광야 같은 곳에 자리 하고 있는데, 남쪽으로 빅 베어 호수가 있어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산 하나를 넘게 되는데 이곳에서 훈련원을 내려다 보면 마치 느보산에서 보는 가나안 같은 느낌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선교 노동 공동체에서 선교사님들과 생활을 하는 것이 참 의미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주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시간이 없었던 저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상상해 보며 믿음의 선배님들과 함께 말씀을 보는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9월의 캘리포니아 북동부의 날씨는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여 뙤악볕 아래에서 대추를 따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땀이 나고 얼굴이 익어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대추 열매를 따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바쁘게 했습니다. 더욱이 대추 나무에는 가시까지 곳곳에 있어 손가락 끝이나 어깨 등을 찔리기 일쑤였습니다. 대추를 따는 것이 익숙치 않은 저는 수고를 통해 얻어지는 선교 후원금의 액수가 매우 적어 보였습니다. 결국 대추 따는 일은 인간적인 판단으로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왔습니다.

미국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렸던 친구들에게서 오랜만에 미국에 와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냐는 전화 물음이 왔고, 저는 대추를 따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친구들은 이 귀한 시간에 웬 대추냐는 반응이었습니다. 저는 LA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킹 살렘 훈련원에서만 보낼 수 없다는 것과 서둘러 빨리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하여 대도시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렌트 카를 알아보니 훈련원에서 40분은 운전을 해서 가야 하는 곳에서 자동차를 픽업해야 하고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LA까지 5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문득 제 자신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이곳 훈련원을 벗어나 대도시로 향하려는 저의 모습은 분주함으로 가득 차 있었던 한국에서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께서 번잡한 곳에서 그분의 음성을 듣기에는 부족한 영성이라는 생각을 주셨고, 잠시라도 핸드폰과 이런 저런 음악과 뉴스들을 자제하고 오직 대추 따는 일과 그 속에서 잠잠히 주님을 생각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도착한 3일째 저녁, 적어도 주일까지 훈련원에서 정말 간절하게 주님을 구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대추를 따며 주님을 묵상한 것이 참 많았는데 간단히 그 내용들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주위에 열매는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한참 대추를 따다 보면 다 딴 것 같아 더 이상 딸 것이 없어 보이는데 찬찬히 대추 나무를 둘러보면 감추어진 대추가 또 보입니다. 주변에 모두 예수님을 믿는 것 같고, 굳이 제가 해야 할 선교 사역이 없어 보이지만 한번 더 관심을 갖고 주위를 살펴보면 주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영혼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대추를 따다 보면 따지 않은 열매가 스스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는 모른척 지나치지 말고 주워야 하는데, 이는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에서 저의 노력으로 얻어낸 것들보다 더 많은 것들이 이미 주위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값없이 얻어진 것들을 무심코 지나칠 경우가 너무나 많은데 감사함으로 이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대추를 따다 보면 빨리 따고 얼른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 많은 대추를 언제 다 딸까 하고 엄두가 나지 않을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꾸준함보다 더 빠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한 개, 한 개를 따 나가면서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이 담긴 대추 통을 보며 뿌듯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지금은 엄두가 나지 않지만 매일 매일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믿으며 꾸준히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한 번에 주님께 큰 일을 하고자 하는 결심보다 더 큰 일에 쓰임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추를 따는 가운데 괴로운 것은 부지 중에 가시에 찔리는 것입니다. 숨어 있는 가시에 찔리면 순간 움찔해지곤 했습니다. 가시가 참 원망스러웠는데 가시도 열매도 모두 한 나무에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 가운데 가시도 있고 열매도 있다면, 또 교회에서 나는 가시일까 열매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주님이 보시기에 가시가 되지 말고 열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처 주는 사람이기 보다는 주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나누는 통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지혜는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면 나뭇가지 아랫쪽에서부터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가시는 나무에서 가지가 나뉘어 지는 부분에 위쪽으로 뾰족하게 있었습니다. 때문에 급한 마음으로 손을 가지 윗쪽으로 접근하기 보다 밑에서 받치는 자세로 접근하면 가시에 찔릴 위험을 훨씬 많이 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무엇을 하든지 겸손한 자세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좋은 일이라도 성급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하기보다 겸손함으로 해야 한다는 깨달음도 생겼습니다.

대추 수확은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수확철에만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씨를 뿌리고 자라게 하여 열매를 맺은 대추를 함께 딸 수 있게 하심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렇지만 그 열매를 항상 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확철 동안만 딸 수 있음을 기억하며 주님이 허락하신 이 땅에서의 수고는 일정한 기한이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나무에 달린 수백 여개의 대추알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새삼 놀랐습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잎이 무성하고, 가지가 무성하고 꽃이 무성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가시만 무성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예수님께 접붙여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 나무가 진정 가치있는 나무이며 인생임을 생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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